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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톤의 부동산 - 번외편 : 강남 개발사 _(부제: 김신조가 쏘아올린 작은 공)
    BOO/BOO동산 2020. 9. 14. 14:37

    무릇 부동산을 입문하려는 사람,

    특히 한국에서 부동산 관련 업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강남 개발사를 통으로 알고 가야함.

     

    왜냐?!

     

    이전 글,

    "메타톤의 부동산 입문 2: 서울편중현상"과

    "메타톤의 부동산 입문 4: 국토종합계획"

    을 보면, 모든 계획이 서울, 즉 수도권을 중심으로 

    나무뿌리처럼 뻗어간다는 것을 메타톤의 블로그 구독자라면

    알아챘을 것이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간단한듯 배경지식으로 알아두면 좋을(?)

     

    강남 개발사에 대해 썰을 풀어보려 함.

     

     


    강남이 아니라 영동? 뜬금포

     

    1960년대 원조 서울인 강북지역은 주거, 상하수도가 밀집되어 

    인구 포화상태였고 사람이 살기 참 불편한 상황이었음.

     

    그래서

     

    1970년 국토종합계획에 따라 서울은 강북으로 집중된 인구를 한강 이남의

    허허벌판으로 내리고 수도권을 수도권답게! 

    기존 서울인 강북의 사람과 시설이 포화된 상황이라 분산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영동개발"

    이라는 프로젝트 네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강남권을 개발하기 시작했음.

     

     

    왜 강남인데 "영동"이라는 이름을 썼느냐?

     

    영동형이 왜...

     

     

    "영동"이 충청북도 영동을 말하는게 아니냐 할텐데

    도대체 뜬금없이 영동이 거기서 왜 나와?

     

     

    단순하게 영등포 동쪽에 있다해서 영.동

     

     

    여기서 "영동"이란 영등포의 동쪽 또는 영등포와 성동구 중간에 있다는 의미로

    그냥 줄임말로 영동이라 불렀음,

    강남이라는 개념자체가 없기도 했고 

    이때는 영등포 동쪽에 있으니까 그냥 영동이라고 불렀던 것 같음.

     

     

    1970년대 1차 국토종합계획따라 강남개발이 본격화

     

     

    그래서 위 그림대로 1차 국토종합계획의 큰 그림을 따라

    제1한강교(한강대교)가 처음으로 세워지면서 "동작구"가

    강남의 No.1 시초로 자리잡게 됨.

     

    강남이라는 단어는 이 동작구가 생긴 뒤,

    "강남중학교" 가 생기고 서울에서 처음으로 강남이란 이름을 사용한 학교로 자리잡게 되면서

    "강남"이란 단어가 우리의 뇌 한 구석에 자리잡기 시작했음

     

     

    그런데 모종의 사건이 강남개발의 필요성을 더욱 부추기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란..

     

     

     

     

     

    요즘 같은 시대에 간첩이 어디있습니까!? 엥?

     

     

    1.21 사태 (신조킴 무장공비 청와대 침투사건)임.

    간단히 사건을 요약하면

     

    1968년 1월 21일 밤 북한 124부대원들이 청와대 근처 800미터 범위에 있는

    청운동의 세검정정고개 창의문을 통과하려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정체가 탄로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대응사격을 하면서 

     

    거의 영화방불케 하는 총격전과 수류탄이 난무하는 격전 끝에

    무장공비 28명을 사살하고 생포한 것이 김신조(사진속 인물 당시 26세)였다.

     

    그래서 이 사건 이후 정부는

    유사시 강북에 시설을 분산하면 피난계획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도심기능을 강남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강북에는 백화점,시장, 대학 등

    사람 머릿수가 늘어나는 일체 시설에 대한 새 허가를 동결해 버리고,

    강남쪽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됨.

     

     

    당시 강남 개발은 두 가지 안이 있었음

     

    1. 행정수도 이전

    2. 시설분산

     

    이렇게 두가지가 있었는데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서울 기반시설도 제대로 안 닦여있는데 행정수도이전은 무슨?"

     

     

    당연히 2. 시설분산 안으로 개발루트를 잡았음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가 전시, 분단 상황이 아니었으면

    저 사건 이후 은평, 고양, 파주가 강남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기대함

     


     

    1. 강남지역의 지리적 특성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1970

     

    당시 영동, 즉 강남은 원래 습지가 많고 지대가 낮았음,

    원래 상습 침수구역이어서 장화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 였는데

    비가 많이 올때는 한강 강폭이 적게는 50~200m/넓게는 1,400~ 2,000m 까지 늘어났었음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700명이 사망하고 이를 복구하는데만

    조선총독부 한해 예산의 60%가 사용될 정도였다고 하니,

    강남 지역땅이 얼마나 골때리는 곳이었는지 알 만함

     

    당시 강남지역 동 별로 특징을 간단 요약해보면,

     

     

    잠원동 : 습지지역으로 당시 강북 화교들의 중국집 성행으로 기존 뽕 생산에서 무 생산 늘림

    서초동 : 강북 미군, 부자집 사람들 화초 사러온 꽃 동네

    도곡동 : 도라지 명물 특산지

    압구정 : 배가 유명한 과수원

    청담동 : 물이 깨끗한 동네

    개포/일원동 : 토지가 비옥해서 유명한 과수원

     

     

    이정도 인식이었음

     

    그리고 당시 광화문에서 양재를 가려면 1박 2일이 걸렸음;

    반대로 강남 사람들이 강북으로 가려면 현재 타워팰리스 위치 양재천에서 

    배타고 뚝섬까지 간 다음 뭍으로 이동해야 했었음

     

    사라진 잠실 신천 나루터와 나룻배

     

     

    그런데 이런 교통적인 불편함이 한남대교가 1966년 완공되면서 교통이 편해지자

    양재 말죽거리 땅값이 처음으로 폭등했음

    (한남대교 건설전 평당 200원 -> 건설 후 평당 3,000원 !!)

     

    이렇게 교통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깔리게 되면서

    강남이 점점 요충지로 변모하기 시작함.

     

    제 1한강교 건설과 더불어 강변도로에 3,700m짜리 제방이 쌓이고

    그 위에 도로가 설치되었는데 이 도로는 최초의 자동차 전용도로이자 유료 도로가 되었음

     

    이때부터 순서대로 제방이 만들어지고 길이 생기면서 APT 부지가 조성되기 시작함(떡상의 징조)

     

     

    저자도 복원위치

    아파트부지는 공유수면 (강, 하천 등 정부 소유의 지역)을 매립하면서 진행이 되었는데

    그 당시 한강의 저자도라는 섬의 모래를 사용하여 압구정 일대를 매립, 택지를 조성하여

    APT를 분양하기 시작함

     

     

    반포자이 반...포..자이..

     

    시간이 흘러 1970년 반포지대는 삼부, 대림, 현대건설 3개 회사가 

    강남의 19만평을 매립해, 3만평이 도로공사에 사용되고 

    나머지 16만평을 건설사가 개발을 위해 가져가게 됨.

     

    그 후로 재미를 보게 된 건설회사들과 중동특수 및 경기호황이었던 1980~90년대 들어

    APT가 지어지기만 하면 동나게 되는 초특급 알토란 지역으로 탈바꿈 하게 되었고

    청약 경쟁은 날로 심해지기 시작함.

     

    이때 당시 늘어나는 인구 통제를 위해 정부는 지금보면 미친짓을 시행함ㅋㅋㅋ

     

     

    청약의 우선권을

    "정관수술 하는 사람" 에게 부여한 거.. ;ㅋㅋㅋ

     

    고자라니

     

    하여튼 자발적 고자(?)가 되면서까지 청약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을 정도로 건설사 호황기가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영원하지 못했는데.

     

    이유가 건설사들이 은행에 대출을 받아서 이 호황기 제대로 빼먹어보고자

    더욱 많은 아파트를 짓기 시작해서 재정건전성이 부실하게 되었고

    결국 1980년 후반에 많은 건설사들이 IMF 크리를 맞고 줄도산 하게됨.

     

    크흑흐규ㅠ

     

    근데, 이때 부동산을 샀어야 했다..

    (비트코인도.. 그때 샀어야 했다고 생각했을 때 샀어야 했다고 생각했을 때....)

     

     

    각설하고 강남은 이런 습지에 맹지느낌이 강한 곳이었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상황이 강남을

    현재의 강남으로 만들어지게 도왔다... 이말임

     

     

    그래서

    국민의 바람과 함께 정부도 물들어오자 노젓듯이 발맞춰 정책도 도와 강남개발에 기름을 붓게됨.

     

     


    2. 강남의 인프라 몰아주기

     

    땅(토지)의 가치가 상승하기 위한 요인은

    넓게 보았을 때 수요의 증가. 이고

     

    세분화 하면

    1. 교통

    2. 주거

    3. 일자리

     

    이 세가지 요소가 합쳐지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땅에 사람이 모이게 됨.

     

    1960년대부터 이어진 강남 개발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교통 인프라의 확충

     

    인구분산정책의 일부로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이전이란 이슈가 있었음

     

    당시 서울 시내 고속버스터미널은 운송회사별로 종로, 동대문, 서울역 등 여러곳에

    산재해 있어서, 교통혼잡의 주요 원인이었음

     

    그래서 서울시는 1975년 6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설치계획을 발표하고,

    1976년 9월 1일 본 건물 없이 3개의 승차장과 3백평의 공동 정비고만 갖추고 1차 준공하였음

    그 후 터미널은 1978년 11월 본격공사 시작 ~ 1981년 10월 20일 준공했음

     

    당시 서울시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이용활성화를 위해 강북에 있는 터미널까지 강제 폐쇄했음..

     

     

     

    이렇게 모든 인프라를 강남으로 집중하자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리고

    토지값은 상승 제이커브를 그리기 시작함.

     

     

     


     

    3. 강남 인센티브

     

    강남지역은 개발 촉진지구로 지정이 되어 처음에는 각종 세금이 면제되었음

     

    그리고 제 3한강교, 경부고속도로, 지하철 2,3호선 , 고속버스터미널, 법원-검찰청

    무시무시한 개발 호재들이 무더기로 쏟아졌음

     

    그리고

     

    50년대 전쟁을 거치며 어렵게 먹고살았던 부모님 세대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이 얼마나 서렸겠음?

     

    그 부모니들이 강북의 명문학교들이 강남에 이전해서 생성된 "강남 8학군" 역시

    너무나도 탐나고 욕심나는 지역이었을 것이 분명함

     

    강남8학군

     

     

    짐작해 보면 강남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몰리게 된 이유가 이해가 갈 것임

     

    하여튼

    IMF고 뭐고 상관 없이 서울 부동산은 아직까지 건재함 

     

     

     

     

     


    마치며.

     

     

    강남은 정부가 필요 이유에 의해 계획적으로 개발한 도시임.

    현재 강남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선망의 상징, 욕망의 상징이며, 질투의 대상이며, 부의 척도로 인식되고 있음

     

    그런 강남이 몇 십년 전만해도 홍수가 범럼하는 배 밭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조차 잊어버렸을 정도로 강남은 많은 변화를 거쳤음.

     

    그러면서 강남에 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단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때문에 말 그대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음.

     

     

    이런 과정을 보며 자란 사람들은 흔히들 젊었을 때, (그 때 샀더라면..)하고 후회어린 말들을 하곤함.

    그런데, 그런 후회만 하는 사람들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음.

     

    그 때 도전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런투자? 꿈도 꿀 수 없음

    아마 똑같은 때로 돌아갔어도 무서워서, 혹은 그게 가치가 있겠어? 하면서 안할 사람들이 태반일 것임

     

     

     

    그런데 메타톤과 함께 부동산을 입문하는 사람들은 그런 안전하고 나이브한 관념에 빠진 사람들이 되기보다

    조금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투자관을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음.

     

     

    최근 그런 사람들이 놓쳤던 부동산 투자 기회들 몇개 꼽아 드리겠음.

     

     

     

    1기 신도시인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을 개발했을 때도,

    2기 신도시 인천(검단), 김포(한강), 화성(동탄 1,2기), 평택(고덕), 수원(광교),성남(판교), 송파(위례),양주(옥정),파주(교하)

     

     

     

    를 신도시로 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우리가 알아채지도 못한 곳에서 기회들이 스쳐 지나가고 

    우리는 그걸 알아채지도 못하거나, 혹은 기획부동산이라거나 하는 말들로 인해 

     

    귀머거리처럼, 장님처럼, 기회들을 양보하며 살아왔단 것임.

     

    지금도 정부는 모든 계획과 자료를 통해 온 국민에게 공개하며 국가주도로 엄청난 규모의 개발계획을 머금은

    도시들을 알려주고 있음.

     

    메타톤과 함께 그런 정보와 실제 투자 기회까지 노려볼 수 있도록

    메타톤은 항상 기다리고 있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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